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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우스꽝스럽고 씁쓸하고 쓸쓸한 양심 고백 -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 리뷰|현실과 악, 그리고 문학의 본질 1. 현실과 악의 경계: 우루티아 사제의 양심 고백로베르토 볼라뇨의 『칠레의 밤』은 한 인간의 마지막 고백이자,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수많은 타협과 외면에 대한 자백이다. 주인공 세바스티안 우루티아 라크루아는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한 노인의 형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결코 평온하지 않다. 그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변명하고 있으며, 무수히 많은 목소리로 과거를 끄집어낸다.『칠레의 밤』은 우루티아의 독백을 통해 20세기 칠레 문학의 위선과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어둠을 동시에 탐색하는 소설이다. 그가 회상하는 장면 하나하나에는 그가 행했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로 짓밟힌 진실들이 녹아 있다. 그 진실은 결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 2025. 4. 25.
『앵무새 죽이기』 – 시대를 초월한 정의와 양심의 고전 1. 『앵무새 죽이기』 작품 개요와 배경1-1. 작가 하퍼 리와 집필 배경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 작가 하퍼 리가 1960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발표와 동시에 평단과 대중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미국 남부 사회의 인종차별과 사회적 부조리를 날카롭게 고발하면서도, 어린아이의 시선이라는 순수한 관점을 통해 그 비판의 강도를 부드럽게 풀어냈다.하퍼 리는 앨라배마주에서 자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으며, 실제로 주인공 스카웃의 어린 시절은 그녀 자신의 유년기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실제 변호사였고, 소설 속 ‘딜’의 모델은 친구 트루먼 카포티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자전적 성격은 뚜렷하다.1-2. 1930년대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 현실소설.. 2025. 4. 24.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의 가장 철학적인 이야기 “삶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은 필연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이 문장은 줄리언 반스의 소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Elizabeth Finch )를 관통하는 하나의 철학적 명제이자,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축이다. 우연처럼 시작된 만남, 우연히 스치듯 주고받은 한마디, 우연처럼 주어진 기회.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삶의 궤도 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필연적 사건이었다고 믿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순간들로 이루어진다.줄리언 반스는 한 남자가 경험한 두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삶과 역사, 기억과 해석의 본질을 천착한다. 한편으로는 아주 개인적인 서사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적이고 사상적인 구조를 가진 작품이다. 이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서사를, 반스는 특유의 정확한 문장과 날카로.. 2025. 4. 22.
『체실 비치에서』 리뷰 – 이언 매큐언이 그려낸 사랑과 회한의 정수 『체실 비치에서』 소개 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어톤먼트》 이후 또 하나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중편 소설이다. 2007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영국 현대소설의 거장답게 짧은 분량 속에 깊은 주제 의식을 담아내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고, 세계적 문학상인 부커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특히, 단순한 줄거리 안에 인간의 감정선과 시대적 억압을 날카롭고 섬세하게 포착해 낸 이언 매큐언 특유의 문체는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찬사를 받았다.『체실 비치에서』는 1960년대 초, 보수적인 성 관념이 지배하던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 남녀가 결혼 후 맞이하는 첫날밤의 심리적 갈등과 그로 인해 벌어.. 2025. 4. 21.
『페스트』 해석: 부조리와 인간 존재의 의미 인류의 역사 속에서 질병은 단순한 생물학적 재난이나 일시적인 고통에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삶과 죽음, 윤리적 책임, 공동체의 역할, 나아가 삶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존재론적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어 왔다. 전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성찰했고, 신의 뜻과 인간의 운명을 고민했으며, 때로는 절망과 저항 사이에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탐색해 왔다.그런 맥락에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단순한 소설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이 작품은 1947년 발표 이후 꾸준히 읽히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으로, 그 배경이 되는 오랑 시의 전염병은 단순한 현실 묘사에 그치지 않고,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고뇌와 마주하는 하나의 철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카뮈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2025. 4. 16.
5초에 한 명의 아이가 굶어 죽는 세상, 왜 아직도 기아는 사라지지 않았는가? 기아는 왜 여전히 존재하는가?지금 이 순간, 우리가 이 글을 읽는 단 몇 초 사이에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한 명의 아이가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하루 10만 명. 해마다 3,650만 명에 달하는 이들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들은 이름을 갖고 있었고, 가족이 있었으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소중한 생명체였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고통 속에서 마감되었고, 세상은 이를 담담하게 넘긴다. 매스컴에 보도되지도 않고, SNS에 공유되지도 않는 그들의 죽음은 마치 예견된 운명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정말 그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세계가 매년 생산하는 식량은 120억 인구를 충분히 먹이고도 남는다. 현재 지구 인구가 약 80억 명 수준임을 고려할 때, 사실상 인류 모두가 .. 2025.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