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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 신념과 가족, 그리고 해방의 의미

by 바그다드까페 2025.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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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단순한 가족 서사가 아닌, 한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와 이념, 그리고 인간적 갈등의 복합적인 층위를 담은 깊이 있는 작품입니다. 제주 4·3 사건, 한국전쟁, 산업화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작품 배경으로 등장하며, 이 속에서 신념을 지키고자 했던 사회주의자 아버지 고상욱의 삶과,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 가족의 이야기, 특히 딸의 시선을 통해 펼쳐지는 내면의 변화와 화해가 작품의 중심축을 이룹니다.

작가는 아버지의 이념적 선택을 일방적으로 미화하거나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던 아버지를 장례라는 의례를 통해 다시 마주하는 과정을 그리며,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과 신념, 그리고 관계의 회복 가능성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한 개인의 삶이 역사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럽게 흔들리고, 또 어떻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균형을 찾아갔는지를 목도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결국 신념과 가족 사이에서 끝까지 싸우고 버틴 한 인간의 기록이자, 남겨진 이가 그 삶을 통해 무엇을 배워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줄거리 – 신념 속에서 살아간 한 인간의 기록

이 작품은 주인공인 딸이 아버지의 부고를 듣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평생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아버지 고상욱의 죽음은, 주인공에게 감정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복잡한 여운을 남깁니다. 장례를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주인공은, 오랜 세월 소원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마주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해방 이후,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신념을 품고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합니다. 그러나 그는 월북하지 않고 남한에 남는 길을 택합니다. 이는 그가 어떤 정치적 이념보다 자신이 속한 가족과 공동체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선택이자, 동시에 수십 년간 감시와 배제의 삶을 감내해야 했던 길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삶은 단지 이념 투쟁의 기록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 순간 신념과 현실, 공동체와 개인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통받는 한 인간의 내밀한 역사입니다. 주인공은 장례식 중에 아버지를 기억하는 이웃과 지인들을 만나며,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또 다른 면모를 접하게 됩니다. 그들의 증언은 고상욱을 단지 고집스럽고 불통이었던 아버지로만 기억하던 딸의 인식을 바꾸어 놓습니다.

장례가 끝나갈 무렵, 주인공은 묘비명에 새길 단어를 고민하다 ‘해방’이라는 단어를 선택합니다. 이 ‘해방’은 정치적 해방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는 아버지에게 억압이었던 삶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딸에게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짊어졌던 무거운 감정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합니다. 그 짧은 한 단어 안에는 세대를 거쳐 이어진 갈등과 용서, 이해가 농축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 신념과 가족, 그리고 해방의 의미

고상욱, 해방된 자인가, 또 다른 속박의 희생자인가?

고상욱은 분명 신념을 지킨 인물입니다. 그는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고, 자신의 믿음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집스러운 신념이 가족에게는 때로 또 다른 억압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는 사회적으로는 국가 권력에 의해 감시받고 배제된 피해자였지만, 가족 안에서는 절대 권위자이자 감정 표현에 인색한 아버지였습니다.

이 딜레마 속에서 작가는 ‘해방’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합니다. 고상욱이 추구한 해방은 단순한 정치적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일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한 인물이었습니다. 바깥에서는 사상 검열과 감시가 있었고, 안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과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는 물리적으로는 자유인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늘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설정은 독자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해방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진정한 자유는 누구에게, 언제 가능한가?" 고상욱은 정치적 의미의 해방을 추구했지만, 인간관계의 영역에서는 소통의 부재와 정서적 거리감을 해결하지 못한 채 삶을 마쳤습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이념의 해방’과 ‘인간관계의 해방’은 전혀 다른 문제임을 섬세하게 짚어냅니다.

한국 현대사 속 가족의 의미 – 갈등을 넘어 화해로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개인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과 이념 대립은 수많은 가정에 분열과 침묵을 강요했습니다. 특히 남한 사회에서 사회주의자 혹은 그와 관련된 사람들은 공공연히 차별과 탄압을 받아야 했고, 그 가족들 또한 ‘빨갱이 자식’이라는 낙인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고상욱의 가족 역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깊은 상처를 입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했고, 아내는 남편의 신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내면에서 멀어졌습니다. 이처럼 국가 권력에 의한 외부 억압은 가족 내부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억압과 고립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작품 후반부에서 주인공은 과거를 직면하고,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들어섭니다. 이 과정은 곧 자신의 과거를 치유하고,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가는 여정입니다. 이는 단순한 용서나 미화가 아니라, 이해와 수용의 깊은 정서적 성장입니다.

정지아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가족과의 복잡한 감정들을 건드리며, 역사와 개인이 어떻게 얽히는지를 조명합니다. 과거의 상처를 외면하거나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의미를 되새길 때 비로소 진정한 해방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결론: 진정한 해방이란 무엇인가?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덮고 나면, 독자는 다시 한번 ‘해방’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고상욱은 스스로 해방된 자라고 여겼지만, 정작 가족에게는 상처와 거리감을 남긴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딸 역시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그와의 얽힌 감정을 정리하고자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복잡함 속에 작가는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이해할 수 없던 과거,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갈등은 죽음이라는 한계를 계기로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해방’은 외적인 자유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 응어리를 내려놓고 진심으로 서로를 마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이 작품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딸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아버지, 가족, 그리고 삶 속에서 미처 풀지 못한 감정과 마주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그 마주함 속에서 비로소 해방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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