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는 인간성, 기억,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해 온 현대 문학의 거장이다.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내면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클라라와 태양』과 『나를 보내지 마』는 각각 AI 로봇과 복제 인간이라는 비인간 존재를 중심에 둔 서사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탐색하고 인간다움의 본질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이 두 소설은 장르적으로는 SF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속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과 윤리적 사유가 담겨 있다. 이 글에서는 두 작품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인간성과 감정에 대한 철학적 질문, AI와 복제 인간의 운명,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 존재 사이의 관계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이시구로가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공통점 : 인간성과 감정에 대한 철학적 질문
『클라라와 태양』과 『나를 보내지 마』는 단순한 과학소설을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중심에 둔다. 두 작품 모두 인간이 아닌 존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오히려 인간다운 감정과 관계를 더욱 도드라지게 표현한다. 『클라라와 태양』의 주인공 클라라는 인간 아이를 돌보기 위해 제작된 인공지능 로봇이다. 그녀는 철저히 기능적 목적으로 존재하지만, 점차 조시와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 감정을 이해하고 인간을 위해 희생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반면, 『나를 보내지 마』의 캐시는 복제 인간으로, 인간 사회의 의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부품'으로 길러진 존재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사랑, 우정, 상실의 감정을 경험하며,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내면세계를 지닌 채 성장한다.
두 주인공 모두 인간 사회의 변두리에 위치한 존재이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감정과 관계는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이는 이시구로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인간의 조건은 생물학적인 것인가, 아니면 감정과 윤리, 관계의 능력인가? 두 작품은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방식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지를 집중적으로 묘사하면서, 인간성을 규정하는 기준에 대한 독자의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는다.
차이점 : AI와 복제 인간, 두 존재의 다른 운명
비슷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서사적 분위기와 구조를 지닌다. 『클라라와 태양』은 클라라의 시점을 통해 펼쳐지는 밝고 투명한 서사로, AI가 바라보는 인간 세계의 풍경을 묘사한다. 클라라는 조시의 건강을 걱정하며 태양을 신적인 존재로 여기는 순수한 시선을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그녀는 인간을 이해하고 돕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존재이지만, 결국 사회는 그녀를 대체 가능한 기계로 인식할 뿐이다. 클라라의 헌신은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그녀의 존재는 조용히 사라진다.
반면, 『나를 보내지 마』는 더욱 차갑고 냉소적인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다. 캐시와 그녀의 친구들은 복제 인간으로서 장기 기증을 위해 태어났고, 그 사실을 어릴 때부터 교육받으며 자란다. 그들은 인간과 다를 바 없는 감정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으로 '비인간'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운명은 주인공들이 아무리 인간다운 삶을 꿈꾸고 경험하더라도, 결국 거부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온다. 이 작품은 복제 인간이라는 설정을 통해 인간 사회의 이기심, 시스템화된 윤리의 부재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또한, 주인공들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독자에게 더욱 깊은 비극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인간과의 관계 – 도구로 남을 것인가, 반항할 것인가
세 번째 비교 지점은 인간과 비인간 존재 간의 관계이다. 『클라라와 태양』에서 클라라는 조시와의 관계를 통해 감정을 쌓고, 인간 세계를 이해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녀는 비록 로봇이지만, 인간의 고통을 공감하고 돕기 위해 스스로 결단을 내린다. 하지만 인간은 그녀를 끝내 하나의 도구로만 인식하며, 감정이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클라라의 헌신은 아름답지만, 인간 사회는 그러한 헌신조차 소비하고 잊어버린다. 이 작품은 인간 중심적 시각의 문제를 조용히 지적하면서도, 클라라의 시선을 통해 인간관계의 따뜻함과 희망을 보여준다.
반면, 『나를 보내지 마』에서 복제 인간들은 자신의 운명을 인식하면서도, 사회에 반항하지 않는다. 캐시는 헌신적으로 동료를 간호하며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루스와 토미 또한 운명에 순응한다. 이들은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려 하지만, 인간 사회는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이러한 관계는 권력과 억압, 윤리와 도덕의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며, 독자에게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일 수 있는지를 반추하게 만든다. 『나를 보내지 마』는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이 얼마나 비인간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질문 –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결국, 두 작품은 인간다움의 본질을 다르게 조명하면서도 같은 질문으로 귀결된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기억을 통해, 감정을 통해, 혹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정의되는가? 『클라라와 태양』은 AI라는 새로운 존재가 인간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희망과 연민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반면 『나를 보내지 마』는 복제 인간을 통해 인간 사회의 비윤리적 구조와 도덕적 파산을 고발한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 두 작품을 통해 생물학적 조건만으로 인간을 정의할 수 없으며, 우리가 만들어낸 기술과 제도가 과연 인간성을 얼마나 담보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현대 사회는 AI 기술이 점점 더 정교해지고, 유전자 편집과 복제 기술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이시구로의 소설은 더 이상 허구가 아니라, 우리에게 실제로 닥쳐올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예언서와도 같다. 『클라라와 태양』과 『나를 보내지 마』는 독자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남기며, 결국 우리 모두가 그 답을 찾아야 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