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사로잡은 ‘페란테 열병’, 그 마지막 이야기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전 세계 독자들을 매료시킨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유년기의 우정과 성장통을 다룬 『나의 눈부신 친구』(제1권)에서 시작해, 청년기의 도전과 좌절을 그린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제2권), 중년기의 변화와 성숙을 담은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제3권)를 거쳐, 노년기의 관계와 삶을 조명하는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제4권)로 마무리된다.
소설은 주인공 레누(엘레나)와 릴라(라파엘라)라는 두 여성의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을 넘어, 경쟁과 질투, 동경과 갈등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의 혼합체이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성의 삶과 정체성, 사회적 불평등, 가족과 사랑에 대한 심도 깊은 통찰을 경험할 수 있다. 페란테의 글은 강렬하면서도 섬세하며, 그녀가 묘사하는 감정과 상황들은 현실과 다르지 않다. ‘나폴리 4부작’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글에서는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가 어떻게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현대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보편적인 경험을 반영하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줄거리 요약 및 핵심 내용
레누와 릴라, 다시 나폴리에서 만나다
전작인 제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에서 레누는 피렌체에서 명문가 집안의 아들이자 대학교수인 피에트로와 결혼하며 작가로서 성공하지만, 남편의 무관심과 차가운 태도로 인해 결혼 생활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한편, 릴라는 나폴리를 떠나지 않은 채 공장에서 일하며 험난한 환경 속에서 아들 젠나로를 키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은 시간이 흐르며 결국 나폴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레누는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며 릴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좋아. 너희 집 위층을 얻을게. 고향으로 돌아갈게.”
이 말을 끝으로 레누는 나폴리로 돌아가고, 릴라와의 관계는 다시 시작된다. 두 사람은 한 집의 위아래층에서 살며 더욱 가까워진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딸을 출산하며 모성이라는 또 다른 공통된 경험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서로를 의지하면서도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하는 감정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릴라와 레누 – 애증의 관계
흥미로운 점은, 이전까지 레누가 릴라에게 영향을 받는 입장이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릴라도 레누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강하고 독립적인 성격으로 보였던 릴라는 지진을 겪은 후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리며 레누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발 부탁이야. 나 때문에 기분이 상하거나 내가 안 좋은 말을 하면 귀를 막아버려. (…) 네가 떠나버리면 나는 추락하고 말 거야.”
릴라는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결국 레누를 필요로 하며 그녀에게 의지한다. 레누 또한 릴라와의 관계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했지만, 그녀 역시 릴라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벗어나고 싶어 하기도 한다. 질투와 애정, 동경과 갈등이 교차하는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이 아닌, 운명처럼 얽힌 굴레와도 같다. 레누와 릴라는 떨어질 수도, 완전히 하나가 될 수도 없는 복잡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거울처럼 마주 보며 살아간다.
질투와 열등감,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 소설
릴라와 레누의 관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감정 중 하나는 ‘질투’이다. 이는 친구 사이에서 느끼는 사소한 감정이 아니라, 여성의 삶 전반에서 끊임없이 작용하는 복잡하고도 깊은 감정이다. 질투는 때로는 동경으로, 때로는 열등감으로 변하며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릴라는 항상 레누보다 뛰어난 지능과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어린 시절부터 레누는 릴라를 존경하면서도 동시에 그녀에게 강한 질투를 느꼈다. 릴라가 책을 읽지 않고도 뛰어난 문장을 구사하고, 학문적 재능이 뛰어난 모습을 보일 때마다 레누는 자신이 그녀보다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을 느낀다. 두 사람이 성장한 후에도 이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레누가 작가로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릴라의 평가에 신경을 쓰고, 그녀의 인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질투와 열등감은 다음 세대로도 이어진다. 레누는 자신의 딸 임마와 릴라의 딸 티나를 비교하며 또다시 열등감을 느낀다. 티나는 총명하고 말도 또렷하게 하지만, 임마는 발달이 더디고 조용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레누는 자신의 딸이 릴라의 딸보다 뒤처진다고 느끼면서, 과거 자신이 릴라에게 가졌던 감정을 다시 경험하게 된다. 과거에는 릴라와 자신을 비교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딸과 릴라의 딸을 비교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질투와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이는 많은 부모가 현실에서 겪는 감정과도 닮아 있다. 부모는 때때로 다른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를 비교하며 불안을 느끼고, 나아가 자신의 인생과 타인의 인생을 비교하며 만족과 불만족을 오가곤 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페란테는 여성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복합적인 감정, 특히 질투와 열등감이 어떻게 삶의 일부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며,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얼마나 미묘하고 복잡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현실을 반영하는 사회적 메시지 - 계급과 사회적 불평등 문제
페란테의 작품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레누와 릴라의 삶을 통해 부패한 정치, 불평등한 사회 구조, 계급 간 격차 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사건들은 20세기 후반 이탈리아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속에 담긴 문제들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현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특히, 니노와 파스콸레의 사례는 사회적 불평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레누의 옛 연인이자 정치인이 된 니노는 부패한 권력과 결탁해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그는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오르지만, 가진 자들의 네트워크 속에서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반면, 같이 사회운동을 했던 파스콸레는 가난한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으며 처벌을 피하지 못한다. 이러한 현실을 파스콸레의 동생 카르멘은 다음과 같이 대변한다. “있는 집 자식들은 요리조리 빠져나가는데 우리 오빠 같은 사람들만 곤경에 처하게 할 수는 없어.” 이 대사는 가진 자들은 처벌을 피하고, 사회적 약자들은 희생양이 되는 불평등한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소설 속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권력과 재력을 가진 사람들은 법망을 빠져나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쉽게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
페란테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릴라와 레누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엘리트 코스를 밟은 니노는 아무리 비윤리적인 행동을 해도 사회적으로 용인되지만, 하층 계급 출신인 파스콸레는 같은 행동을 했더라도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이러한 불평등은 경제적 차이를 넘어,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두 여성의 관계와 성장뿐만 아니라,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불공정한지를 페란테는 날카로운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페미니즘 소설로서의 나폴리 4부작
페란테는 ‘나폴리 4부작’을 통해 여성들이 마주하는 현실과 내면의 갈등을 정교하게 그려낸다. 그녀의 작품은 성장 서사를 넘어 여성의 정체성, 사회적 역할, 그리고 가부장제 속에서의 생존과 타협을 깊이 탐구한다. 특히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에서 레누는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진정한 독립을 이루었는지 의문을 품는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여성들을 위한 조력자 역할을 한 것일까, 아니면 남성 중심 사회에서 그저 이용당한 것일까?”
이 질문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사회적 성공이 곧 해방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고 있다. 레누는 여성 해방을 외치면서도, 결국 기존 질서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혼란을 느낀다. 이는 단순히 소설 속 캐릭터의 갈등을 넘어, 많은 여성 독자들이 공감할 만한 현실적인 고민이기도 하다.
페란테는 여성 문제를 한층 더 확장해 성소수자의 정체성과 사회적 편견 또한 조명한다. 동성애자인 알폰소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면서도 보수적인 사회의 시선에 억눌려 살아간다. 그는 릴라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결국 사회적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처럼 ‘나폴리 4부작’은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들이 겪는 억압과 갈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페란테는 단순히 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현대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치며 강렬한 페미니즘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
결론 – 페란테가 선사하는 강렬한 독서 경험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여성의 삶과 우정, 모성, 사랑, 사회적 모순 등을 복합적으로 담아내며 깊은 울림을 준다. 레누와 릴라는 서로를 통해 성장하면서도 끝없이 경쟁한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며, 한 사람의 인생이 다른 한 사람의 인생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나폴리라는 공간을 넘어 전 세계 여성들의 삶을 대변한다. 강렬하고도 섬세한 필체로 현대 사회를 조명한 엘레나 페란테의 작품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