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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는 감정이다." 이 말이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정치를 논리, 정책, 숫자의 문제로 인식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투표를 결정짓는 건 감정이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이를 명확히 설명한다. 그의 주장은 단순하다. 사람들이 어떤 말을 듣고, 어떤 프레임 속에서 그 말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선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글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을 바탕으로, '공감'이 왜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인지를 분석한다. 진보와 보수는 서로 다른 도덕 체계를 바탕으로 각자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 언어는 단순한 표현을 넘어 정치적 현실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일상에서 어떤 단어를 쓰고, 어떤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지가 곧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 된다. 프레임은 단지 전략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가치의 언어다. 이제는 그 언어를 스스로 선택하고, 바꿔나갈 때다.

    프레임 이론이란 무엇인가 – 말이 바꾸는 생각의 틀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어쩌면 수백 번 ‘프레임’이라는 보이지 않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본다. 프레임(frame)이란 단순히 어떤 현상을 묘사하는 언어가 아니라, 그 언어가 지닌 의미의 구조, 다시 말해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인식의 틀이다. 이 틀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형성되고 작동한다. 부모의 말투, 학교에서 배운 규범, 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듣는 표현들—이 모든 것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프레임은 그렇게 우리 삶 깊숙이 스며든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이 프레임이 정치 담론의 수사법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 체계 그 자체를 구성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어떤 메시지를 접할 때, 그 내용보다 먼저 그 말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인지한다. 예를 들어, ‘세금폭탄’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자. 이 말은 단순히 세금 인상의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내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벌을 받는 것 같은 불공정함과 분노를 느끼게 만든다. 반대로 같은 정책을 ‘공공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표현하면, 사람들은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 공동체적 책임이라는 맥락 속에서 그 정책을 바라보게 된다.

    중요한 건, 이처럼 단어 하나가 우리의 판단을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프레임은 단순히 작동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강화된다는 점에서 매우 강력하다. 어떤 프레임은 반복될수록 뇌에 더 깊이 각인되고, 한 번 각인된 프레임은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 게다가 역설적으로, 프레임은 ‘부정’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레이코프가 자주 언급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문장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그 문장을 듣는 순간, 오히려 코끼리를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누군가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그 주장을 반복하면, 그 프레임을 되레 강화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진보 진영은 보수의 언어를 차용해 반박하기보다, 자신만의 언어로 프레임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단지 ‘반대한다’는 말로는 새로운 인식의 틀을 만들 수 없다. 진보의 핵심 가치는 공감, 연대, 공동체에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치를 언어로 구체화하고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일이야말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첫걸음이다. 프레임은 논리 이전에 감정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 감정은 결국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바꾼다.

    그래서 말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말은 하나의 세계다. 그리고 그 세계를 통해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현실을 바꾸기 시작할 수 있다.

    공감의 정치, 레이코프 이론으로 읽기

    공감의 정치 – 우리가 왜 마음으로 투표하는가 

    우리는 종종 정치를 머리로 판단한다고 생각한다. 뉴스에서 숫자를 보고, 후보자의 공약을 비교하고, 정책 효과를 분석하는 것이 옳은 유권자의 자세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사람들은 머리보다 마음으로 투표한다. 이 말은 직관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수많은 정치 심리학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는 사실상 대부분의 결정을 감정으로 내리고, 그 감정을 나중에 논리로 정당화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 사람의 정책이 좋다”가 아니라 “이 사람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아서 좋다”가 훨씬 진실에 가깝다.

    조지 레이코프는 이 점을 ‘프레임 이론’ 안에서도 아주 강조한다. 그는 사람들이 각자의 도덕적 세계관에 따라 정치적 입장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이 세계관은 크게 두 가지 모델로 나뉜다. 하나는 ‘엄격한 아버지’ 모델, 다른 하나는 ‘자상한 부모’ 모델이다. 보수는 전자가, 진보는 후자가 중심이다. 보수적 세계관은 자율과 책임, 경쟁과 질서를 강조하며, 강한 리더십과 통제가 사회를 유지한다고 믿는다. 반면 진보적 세계관은 돌봄, 공감, 평등한 기회를 핵심 가치로 삼는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유권자들이 정책의 ‘효율성’보다는 이 두 도덕 모델 중 어느 쪽에 더 감정적으로 가까움을 느끼는지에 따라 투표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어떤 유권자가 복지 정책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부하거나 비난하는 경우를 보자. 이는 그 정책이 자신이 믿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도덕 틀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복지를 ‘게으른 사람을 돕는 제도’로 오해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정치인을 위험하다고 느끼게 된다.

    이렇듯, 정치는 감정의 영역이다. 그렇기에 진보는 더 구체적으로 ‘공감’을 언어화해야 한다. 레이코프는 진보가 중도 유권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보살핌’의 프레임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당신이 가장 걱정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걱정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이런 질문은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다. 이 질문은 상대의 마음을 열고, 진보적 도덕 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된다.

    게다가 사람들은 자신이 공감받고 있다고 느낄 때 마음을 열고, 그때 비로소 논리와 데이터도 귀에 들어온다. 그러므로 공감은 단지 따뜻한 감정이 아니라,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자 전략의 핵심이다. 진보 진영은 이 점을 인식하고, 정책보다 먼저 가치와 감정을 이야기해야 한다.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감정적인 연결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공약도 공허한 소리로 들릴 뿐이다.

    결국 유권자는 복잡한 정책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을 선택한다. 그 감정을 가장 잘 건드리는 말, 그 말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주는 사람이 바로 마음속에서 신뢰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는 결국, 누가 더 진심 어린 언어로 상대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가의 싸움이다. 공감은 감정의 이름이자, 설득의 첫 단추다.

    프레임을 바꾸는 말, 세상을 바꾸는 시작

    프레임을 바꾸는 말, 세상을 바꾸는 시작

    “왜 사람들은 자기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할까?”
    이 질문은 수많은 진보적 정치인들과 활동가들이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건강보험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이 나왔을 때, 실질적으로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을 보면 어리둥절해진다. 기본소득, 공공주택, 무상급식 등 누구에게나 이로운 정책으로 보이는 것들조차 일부에게는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프레임’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조지 레이코프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면서, ‘프레임 재구성’이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기존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단순히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거나 수치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전혀 다른 방식의 이야기, 즉 새로운 언어, 새로운 세계관, 그리고 새로운 감정의 틀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세금폭탄’이라는 단어는 납세자를 피해자로 만들고, 정부를 강탈자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 프레임은 매우 강력해서, 아무리 공공서비스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폭탄을 맞고 싶지 않다’는 감정을 넘어서기는 어렵다. 반면 같은 상황을 ‘사회적 연대의 투자’ 혹은 ‘다음 세대를 위한 기반 다지기’로 말하면, 완전히 다른 정서가 만들어진다. 프레임이 바뀌면, 감정이 바뀌고, 감정이 바뀌면 결국 선택도 달라진다.

    프레임을 바꾸는 일은 마치 언덕 위의 바위를 밀어 올리는 것처럼 느리면서도 고된 과정이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하나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다양한 채널에서 일관되게 사용하며, 때로는 대중의 삶과 연결된 사례로 감정적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그래야 프레임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새겨진다. 그리고 한 번 새겨진 프레임은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그것이 한 사회의 상식이 되고, 공통된 가치관이 되며, 정치적 현실까지 바꿔 놓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 ‘말’이라는 것이다. 한 문장, 하나의 단어, 하나의 비유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를 바꾸고, 결국 행동을 바꾼다. 프레임은 단지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읽는 방식이며, 우리가 믿는 진실의 형태다. 우리가 어떤 언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

    이제 정치는 누가 더 복잡한 논리를 갖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더 효과적인 프레임을 만들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전파하느냐가 결정적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정치인만의 몫이 아니다. 언론인, 교사, 작가, 마케터, 그리고 일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우리 모두가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지금 쓰는 말들이 모여, 내일의 담론 지형을 만든다.

    그러니 생각해 보자.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말은 어떤 프레임을 강화하고 있는가? 지금 내 말은 더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를 밀어내고 있는가?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은, 세상을 설명하는 언어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말은, 결국 우리 자신을 바꾸는 말이기도 하다.

    결론: 언어는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세상을 바꾼다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단순히 정치 언어에 관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언어로 설명하며, 어떤 감정으로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선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정치가 ‘논리의 전쟁’이 아니라, ‘프레임의 전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프레임은 언제나 감정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너무 자주 ‘팩트’로 세상을 설득하려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복잡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 즉 자신을 이해해 주는 언어에 더 쉽게 끌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 말이 맞는가?”가 아니라, “이 말이 어떤 프레임을 만들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프레임이 공감, 책임, 연대, 상호 이해에 기반한 것인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정치는 결국 ‘사람을 설득하는 예술’이다. 그리고 그 설득은 마음을 건드리는 말에서 시작된다. ‘공감의 정치’는 단지 따뜻한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전략이자 철학이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신념을 흔들고,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게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보수의 언어를 빌려 쓸 필요가 없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우리가 쓰는 언어 속에 있다.
    그러니 오늘부터 한 번 생각해 보자.
    내가 사용하는 단어는 어떤 프레임을 강화하고 있는가?
    내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가, 아니면 닫게 만드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가치의 언어를 반복하고 있는가?

    세상을 바꾸는 건 거대한 담론도, 복잡한 정책도 아니다.
    그 변화는 언제나 ‘말’에서 시작된다.
    말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신념을 만들며, 신념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결국 세상을 움직인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의 언어를 바꾸자.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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