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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서 문득 삶을 돌아보게 되는 모든 이들에게 던지는 조용한 물음표 같은 책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이야기 속 인물 그레고리우스의 여정을 따라가며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 철학자이자 작가인 파스칼 메르시어는 이 작품을 통해 문학이 어떻게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고, 존재 그 자체를 되묻는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그 여정을 따라가며, 문학이 품은 존재론적 질문을 중심으로 작품의 깊이를 천천히 살펴보려 한다.

    철학적 사유로 읽는 서사 구조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시작은 극적인 사건이나 화려한 장치 없이 조용히 흐른다. 특별할 것 없는 비 오는 어느 아침, 스위스 베른. 평소처럼 학교로 향하던 고전문헌학 교사 그레고리우스는 뜻밖의 장면을 목격한다. 다리 위에서 누군가 뛰어내리려는 찰나의 순간, 그는 망설임 없이 그 여인을 붙잡는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마주한 짧은 만남은 곧 그가 알지 못했던 감정의 파문을 일으킨다.

    여인의 품에 있던 포르투갈어로 쓰인 책 한 권. 그것은 단순한 책이 아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건네진 삶의 단초였다. 책 속의 한 문장이 그레고리우스의 머릿속을, 그리고 마음속을 강하게 울린다.
    “우리가 우리 안의 아주 작은 일부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 문장은 그의 삶 전체를 꿰뚫는 질문이었다. 늘 지식과 규율 안에서 안정된 삶을 살아왔지만, 이 문장은 그를 멈춰 세운다. 그는 처음으로 깨닫는다.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삶이 정말 자신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남이 그려놓은 궤도 위를 그저 걸어왔을 뿐인지. 이 인식은 말없이 그의 내면에 균열을 만들어낸다.

    이 깨달음은 마침내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수업 중 교실을 나가고, 짐도 없이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올라탄다. 계획도 목적도 없이. 그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강한 내면의 외침에 이끌려, 그는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던 ‘또 다른 나’를 향해 무작정 나아간다. 이 장면은 우리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무수한 선택의 갈림길, 그리고 그 앞에서 망설이며 결국 지나쳐버리는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찬란한 기회를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메르시어는 그레고리우스의 이 탈주 행위를 단순한 충동이 아닌, 철학적 실천으로 묘사한다.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응답이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한 내면적 결단이다. 그는 철학자가 아니라 고전문헌학자였지만, 그날 이후 삶을 묻는 철학자가 된다. 타인의 문장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자기 삶의 언어를 만들기 시작한다.

    소설 속 배경 하나하나에도 상징이 녹아 있다. 기차는 흔히 '여행'을 의미하지만, 여기서의 기차는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닌, 자기 인식과 자아 해체의 시작점이다. 은 단지 정보의 저장소가 아니라, 삶을 건드리는 ‘사유의 도화선’이며, 낯선 도시 리스본은 미지의 자기 자신을 마주하기 위한 공간이다. 그리고 죽은 자의 흔적을 좇는 여정은 결국 살아 있는 자신을 되찾기 위한 길이다.

    이러한 장치들은 모두 독자를 향해,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지금, 진짜 자신으로 살고 있나요?”
    “그동안 선택하지 않았던 삶은 어디에 있나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서사는 천천히 흐르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더디고 고요하게 흘러갈수록, 그 물음은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아주 작게,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 안의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 보게 만든다.

    그레고리우스의 여정은 곧 독자의 여정이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도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삶은 내 것이 맞는가?”

    그리고 어쩌면,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그레고리우스와 함께 열차에 오른 것일지 모른다.

    문학 속 존재론적 질문, 『리스본행 야간열차』 깊이 읽기

    아마데우의 문장에 담긴 존재론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으며 많은 독자들이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건, 사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아니다. 오히려 직접적으로는 등장하지 않는, 그러나 이야기의 중심을 꿰뚫고 있는 인물, 아마데우 드 프라두다. 그는 단지 극 중 인물이 아닌, 이 소설의 철학적 사유를 응축해 놓은 목소리이자,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가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들의 대변인이다.

    아마데우는 리스본에서 의사로 활동했던 인물로, 겉보기에는 안정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재능 있고 지적인 동시에, 감수성이 예민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삶에는 한 가지가 부족했다. 바로 그 자신으로 온전히 살아간 시간. 사회적 기대와 가족의 가치관, 종교적 배경, 그리고 정권의 억압이라는 외부의 틀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억제하며 살아야 했다. 결국 그는 자신 안에서 끓어오르는 질문들과 치열하게 마주하며, 그 사유의 흔적을 글로 옮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바로 《언어의 연금술사》다. 그리고 이 책은 우연처럼 그레고리우스의 손에 들어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우리가 우리 안의 아주 작은 일부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 문장은 그레고리우스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멈추게 한다.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는 건 그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조차도 우리가 주체적으로 선택했다기보다, 사회가 정해놓은 안전한 틀 안에서 ‘그저 그렇게’ 흘러온 결과일 수 있다. 아마데우는 그런 삶에 만족하지 못했고, 끊임없이 내면을 되묻고 또 되물었다.

    그의 문장은 단순한 철학적 인용구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고백이며, 자기 해체의 기록이다. 그는 스스로를 해부하듯 분석하고, 타인의 시선을 걷어낸 채 가장 정직하게 자신을 마주한다. 그의 글에는 부끄러움, 후회, 그리고 두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 존재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도 함께한다.

    “우리는 왜 항상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려고 하는가?”
    이 질문은 그가 마주한 현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수많은 역할 속에 살아간다. 자식으로, 직장인으로, 친구로, 누군가의 연인으로. 그러나 그 모든 역할을 벗어낸 뒤, ‘진짜 나’는 과연 누구일까? 아마데우는 그 질문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물음에 스스로를 집어넣는다. 때로는 무너지고, 때로는 회의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조금씩 ‘자기 자신’에 가까워진다.

    그레고리우스는 이러한 아마데우의 글에 깊이 매료된다. 처음에는 그저 한 문장에 이끌렸을 뿐이었지만, 점차 아마데우의 삶 전체에 빠져든다. 그가 남긴 일기, 친구들과의 편지, 가족과의 갈등 속에 담긴 흔적들을 하나씩 추적하며, 그는 아마데우라는 한 인간의 삶을 복원해 나간다. 그런데 이 복원은 단지 과거를 되살리는 일이 아니다. 타인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과정은, 결국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는 일과 닮아 있다.

    아마데우의 글 속에는 살라자르 정권 아래에서의 억압과 갈등도 그려져 있다. 그는 의사로서 비밀경찰의 생명을 살린 일로 인해 사람들의 신뢰를 잃는다. 정의와 윤리 사이에서 갈등했던 그의 선택은, 사회적으로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또 다른 고민과 용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고독 속에서 그는 글을 쓰고, 생각하며, 저항한다. 직접적인 무장 투쟁이 아닌, ‘사유’라는 방식으로 독재에 저항했던 것이다.

    그의 문장들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던졌던 물음과 맞닿아 있다. 하이데거나 사르트르가 말했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개념처럼, 아마데우는 먼저 살아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던 사람이다. 그는 완성된 인간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해체하고, 다시 세우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 점이 바로 이 소설을 단순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론적 탐구서로 만들어주는 이유다.

    아마데우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일이다. 우리가 미뤄둔 질문, 회피했던 감정, 무시했던 갈망들이 그의 문장을 통해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불편하고 아프지만, 동시에 우리를 더 진짜로 만들어준다.

    그레고리우스가 그랬듯이, 우리 또한 아마데우의 글을 읽으며 결국 한 가지를 깨닫게 된다.
    삶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의식적으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문학과 철학의 경계를 허문 서사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건 정말 소설인가?” 이야기의 얼개는 분명 픽션의 형식을 따르지만, 문장 사이사이 스며든 철학적 사유는 마치 누군가의 깊은 사적인 에세이 같기도 하고, 존재에 대한 고백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문학과 철학이라는 두 세계의 경계를 허물며, 그 경계 위에 새로운 서사의 집을 지어 올렸다는 점에 있다.

    파스칼 메르시어는 본래 철학자다. 언어와 사고, 존재와 자아에 대해 탐구해 온 학자가 그 철학적 질문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옮겼을 때, 독자는 단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독자가 아니라 함께 사유하고, 반추하며, 정지하는 독자로 바뀌게 된다. 우리가 책을 읽으며 마주하게 되는 문장 하나하나는 그저 서사의 장면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고, 하나의 울림이다.

    이 작품에서 메르시어는 극적인 전개나 반전 대신, 질문을 남기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질문은 명쾌한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인생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천천히 풀어가야 할 숙제로 남겨진다. “나는 지금 진짜 나로 살고 있는가?”, “내 삶의 방향은 내 안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외부로부터 정해진 것인가?”, “삶을 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모든 질문은 『리스본행 야간열차』 속 인물들이 직면한 문제이자,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다.

    소설이 철학의 얼굴을 할 수 있을까? 메르시어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이 작품을 내놓는다. 아마데우의 문장들은, 그리고 그레고리우스의 방황은, 철학적 담론을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독자는 자연스레 ‘철학자’가 되고, 일상의 감정이나 인간관계 속에서 간과했던 생각들을 다시 곱씹게 된다.

    문학이 철학과 만났을 때, 서사는 더 이상 단순한 이야기 전달의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를 해부하는 도구가 되고, 감정을 깊이 파고드는 탐침이 된다. 메르시어는 줄거리보다 그 줄거리 속 인물의 내면 변화에 집중하며, 그레고리우스가 타인의 삶을 복원하면서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갈등과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작품의 배경 또한 이 철학적 서사를 더 풍부하게 만든다. 포르투갈이라는 낯선 도시, 살라자르 독재정권이라는 역사적 배경, 종교와 윤리, 자유와 억압의 충돌. 이러한 요소들은 단순히 소설의 무대를 설정하는 장치가 아니라, 인간 존재가 속한 복잡한 세계와 그 속에서 부딪히는 내면의 사유를 더욱 깊게 만드는 도구다. 현실의 폭력성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책임을 지는가? 메르시어는 이 물음도 함께 끌어안는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문학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단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일상 속에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는 것인가?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후자에 더 가까운 작품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누군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느리고 조용한 이야기 속에서 독자의 내면은 분명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변화한다.

    철학은 종종 어려운 언어와 개념으로 인해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문학이 그것을 품었을 때, 사람의 언어가 되고, 감정의 언어가 된다. 아마데우의 고백은 철학 논문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한 사람의 절절한 목소리다. 그레고리우스의 망설임도 그렇다. 철학적인 갈등이 아니라, 인간적인 갈등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감정 이입할 수 있고, 철학이라는 딱딱한 단어가 아닌, 삶 그 자체의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결국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문학과 철학이 만났을 때, 그것이 얼마나 우리 삶을 깊고 섬세하게 비출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만남은 독자에게도 새로운 독서 경험이 된다. 단지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투영해 보고, 지금까지 잊고 있던 내면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만드는 시간.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결론: 문학, 존재를 묻는 거울이 되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단지 한 남자의 탈출 이야기, 혹은 타인의 삶을 좇는 추적담으로 읽히지 않는다. 이 작품은 삶에 대해, 존재에 대해, 그리고 우리 각자의 진실에 대해 깊이 질문을 던지는 하나의 철학적 여정이다. 소설 속에서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의 삶을 뒤쫓지만, 실은 점차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여정은 고스란히 독자의 여정이 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멈춰 서게 된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며 미뤄두었던 질문들이 어느 순간 고요하게 떠오른다.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지금의 나는, 진짜 나인가?”
    이 질문들은 불편하고 때로는 아프다. 하지만 꼭 한 번쯤 마주해야만 하는, 인생의 근본적인 물음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수십 년간 자신이 만들어 놓은 삶의 틀을 과감히 부쉈다. 그는 안정된 일상과 명확한 정체성, 존경받는 직업이라는 단단한 틀 안에서 살아왔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 자신의 진짜 욕망을 억눌러온 결과였음을 깨달았을 때,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길이었지만, 그는 그 한 걸음을 내디뎠고, 그 선택은 마침내 자신이라는 존재의 근원을 향해 나아가는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아마데우.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그의 문장 하나하나는 여전히 살아 숨 쉬며 누군가의 삶을 바꾼다. 그는 실패했고, 외로웠으며, 때로는 사랑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내면을 외면하지 않았고, 그 사유의 흔적을 글로 남겼다. 바로 그 글들이 새로운 누군가의 변화를 이끈다. 그레고리우스를, 그리고 우리를.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특별한 이유는, 우리에게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건네고, 자기 자신을 다시 해석할 수 있는 용기를 조용히 일깨운다.

    책을 덮고 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익숙한 일상이 잠시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지금 있는 이곳이, 이 삶이, 정말 내가 원한 것이었는지 되묻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문학은 결국 거울이다.
    하지만 이 거울은 우리의 외모가 아니라, 마음의 윤곽과 존재의 깊이를 비춘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그런 의미에서 독자의 내면을 깊이 비춰주는 책이다.
    그레고리우스처럼, 우리도 이 조용한 열차에 탑승해 자신의 삶을 관찰하고, 기억하고, 선택할 수 있다.

    지금 당신의 인생은 어디쯤 왔는가?
    만약 아직 대답할 수 없다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이 글을 읽은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당신만의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출발하는 순간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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