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엘레나 페란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성장, 정체성, 사회적 배경)

by 바그다드까페 2025. 3. 12.

엘레나 페란테의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나폴리 4부작'의 두 번째 작품으로, 릴라와 레누라는 두 여성의 청년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전작 『나의 눈부신 친구』가 유년기와 사춘기의 우정을 다뤘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인물들이 성인이 되어 겪는 극적인 변화와 선택의 순간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청년기가 된 두 여성은 각기 다른 삶의 길을 걷게 된다. 총명하고 강한 개성을 지닌 릴라는 경제적 안정과 새로운 삶을 꿈꾸며 식료품점 주인 스테파노와 결혼하지만, 그 관계는 곧 폭력과 억압으로 변질된다. 그녀의 재능과 꿈이 깃든 구두는 마피아 조직과 연결된 솔라라 가문에게 넘어가고, 이는 릴라가 남편에게 완전히 종속되는 계기가 된다. 결혼 생활 속에서 릴라는 점점 더 자신을 잃어가며, 사회적 기대에 의해 억압당하는 여성의 현실을 온몸으로 경험한다. 반면, 레누는 교육을 통해 나폴리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한다. 학업에서 성취를 이루고 문학적 정체성을 확립해나가지만, 여전히 릴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끊임없이 그녀와 자신을 비교한다. 나폴리를 탈출한 레누와 그곳에 남아 투쟁하는 릴라, 두 여성의 삶은 서로 대비되면서도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의 우정은 끊임없이 갈등과 연대 사이를 오간다.

이 작품은 여성의 삶과 계급, 정체성을 다층적으로 탐구하는 문학적 걸작이다. 페란테는 인간 내면의 두려움과 강인함을 정밀하게 포착하며, 두 여성이 서로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사실적이면서도 강렬한 필치로 그려낸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개인의 삶이 사회적 배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며, 여성의 연대와 자아 탐색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통해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성장과 변화 – 두 여성의 대조적 삶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요소 중 하나는 레누(엘레나)와 릴라(라파엘라)의 성장 과정이 극명하게 대조된다는 점이다. 두 인물은 같은 나폴리 빈민가에서 태어나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선택과 외부 요인에 의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성장 과정에서 두 사람이 처한 환경, 그 속에서 내리는 결정, 그리고 그로 인해 겪는 내적 갈등은 이 작품의 핵심적인 갈등을 형성한다.

릴라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지능과 독창적인 사고력을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학교에서 누구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창의력 또한 남달랐지만, 가난한 가정환경과 부모의 기대는 그녀가 학업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릴라는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채 어린 나이에 결혼을 선택하게 되고, 이는 그녀의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다. 부유한 상인 스테파노와의 결혼을 통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기대했지만, 결혼 생활은 그녀에게 또 다른 억압과 갈등을 가져온다. 처음에는 다정했던 남편이 점차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그녀를 통제하려 하면서, 릴라는 결혼이 자유가 아닌 또 다른 굴레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저항하며, 주어진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원하는 삶을 찾고자 애쓴다.

반면, 레누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교육을 선택한다. 릴라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레누는 학업을 계속할 기회를 얻었고 이를 통해 나폴리 바깥의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녀는 교육을 통해 사회적 계층을 뛰어넘을 가능성을 보았고, 글쓰기를 통해 문학적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학업에서 성취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누는 끊임없이 릴라와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낀다. 릴라는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강렬한 카리스마와 독보적인 재능을 발휘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친다. 레누는 그러한 릴라의 모습에서 존경과 질투, 동경과 불안을 동시에 느낀다.

이처럼, 두 여성의 삶은 극명하게 대조되면서도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릴라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사회적 억압과 전통적 결혼 제도에 갇혀버리고, 레누는 교육을 통해 자신의 길을 개척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여전히 릴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을 넘어, 한 인간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불안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페란테는 이러한 대조적인 성장 과정을 통해 개인의 선택과 환경이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깊이 탐구하며, 여성의 성장과 독립이 결코 단순한 과정이 아님을 강조한다.

엘레나 페란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성장, 정체성, 사회적 배경)

정체성과 자아 탐색 – 이름의 의미

소설에서 ‘이름’은 단순한 식별자가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릴라는 결혼을 통해 ‘라파엘라 체루로’에서 ‘라파엘라 세라투’로 이름이 바뀌면서, 자신의 정체성이 외부 환경에 의해 규정되고 변화하는 과정을 온몸으로 경험한다. 그녀는 새로운 성(姓)을 받아들일수록 점점 더 자신을 잃어간다고 느끼며, 본래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저항한다.

릴라는 타고난 총명함과 강한 개성을 지닌 인물이지만, 결혼과 함께 사회적으로 새로운 신분을 얻게 되면서 남편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다. 그녀의 이름이 바뀌는 것은 남편 스테파노의 세계에 종속됨을 의미한다. 신혼여행에서부터 스테파노의 폭력과 강압적인 태도를 경험한 릴라는 결혼 생활이 곧 자기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완전히 그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며, 이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그녀는 결혼 후에도 ‘릴라 체루로’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결혼 생활을 기록하며, 본래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반면, 레누는 학업을 통해 나폴리를 떠나고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려 하지만, 그녀 역시 이름과 정체성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녀는 문학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자 하지만, 릴라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려 한다. 나폴리를 떠난 후에도 릴라의 그림자는 그녀의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녀가 쓴 작품에도 릴라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다. 즉, 레누는 공식적으로는 자신의 이름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체성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릴라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작품에서 ‘이름’은 개인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사회 속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릴라는 결혼을 통해 이름이 바뀌면서 자아를 잃어가는 듯하지만, 본래의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저항한다. 레누는 공식적인 이름을 유지하면서도, 릴라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려 한다. 이 소설은 정체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정의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이름’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사회적 배경과 계급 차이 – 여성의 위치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1950~1960년대 이탈리아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계급적 한계와 억압을 심도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나폴리라는 특정한 지역적 배경은 단순한 공간적 설정이 아니라, 인물들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릴라와 레누가 살아가는 환경은 당시 노동자 계층과 중산층 사이의 간극을 여실히 보여주며, 두 인물의 선택과 운명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배경이 된다.

릴라는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강한 의지를 지닌 인물이지만, 가난한 노동자 계층에서 태어난 그녀가 계급의 한계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학업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가족의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기대 때문에 어린 나이에 결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여성들에게 결혼은 가장 일반적인 삶의 경로였으며, 곧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인정의 수단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릴라의 결혼은 자유를 가져다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억압과 통제의 굴레가 된다. 남편인 스테파노는 그녀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대하며, 가정 내에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한다. 릴라는 결혼을 통해 더 나은 위치에 오를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녀를 더욱 큰 제약 속에 가두고 만다.

반면, 레누는 교육을 통해 계층 상승의 가능성을 찾는다. 대학에 진학하며 나폴리를 떠나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속했던 계층이 얼마나 제한적인 삶을 강요하는지 깨닫는다. 하지만 그녀 역시 완전히 그 환경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사회적으로 더 높은 위치에 올랐다고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차별과 제약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도, 문학계에서 남성들과 동등한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두 여성의 삶은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계급과 사회적 배경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릴라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선택했지만, 오히려 또 다른 형태의 억압에 갇히고 만다. 레누는 교육을 통해 계층 이동을 시도했지만,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여전히 사회적 한계를 경험한다. 이 소설은 여성들이 계급적 한계를 어떻게 경험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저항하거나 순응하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를 통해 페란테는 여성의 위치가 개인의 선택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배경과 계급 구조에 의해 강력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결론: 문학적 의미와 현대적 시사점

엘레나 페란테의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여성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 계급 간의 불평등을 깊이 탐구하는 작품이다. 릴라와 레누의 대조적인 삶을 통해, 개인의 선택이 단순한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배경과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두 여성의 우정과 경쟁이 서로의 정체성 형성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며, 인간관계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복합적인 영향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릴라는 결혼을 통해 새로운 신분을 얻지만, 그 과정에서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며 사회적 억압에 맞서 싸워야 한다. 반면, 레누는 교육을 통해 계층 상승을 이루지만, 여전히 릴라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처럼 두 인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적 한계를 돌파하려 하지만,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한 채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반복되는 문제로,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도전과 사회적 기대의 무게를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여성들은 가정과 경력, 사회적 기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하며, 여전히 구조적인 불평등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페란테는 이러한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며, 여성의 성장과 자아 탐색이 결코 단순한 과정이 아님을 강조한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현대 독자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