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나폴리의 폐허 속에서도 빛나는 두 여자의 우정을 그린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는 출간 이후 전 세계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며 문학적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나폴리 4부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복잡한 감정과 사회적 구조를 밀도 높게 그려낸다. 빈곤과 폭력 속에서 성장한 두 주인공 릴라와 레누의 이야기는 단순한 우정을 넘어 삶과 사회를 꿰뚫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엘레나 페란테, 교만을 경계하며 정체를 감춘 작가
엘레나 페란테는 현재 세계 문단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지만 베일에 싸여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작가다. 1992년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필명조차 가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책이 출간된 후에는 저자의 존재가 필요 없다”라고 말하며 철저하게 작품으로만 독자와 소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폴리 4부작’은 세계 문학계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페란테는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로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2015년 이탈리아 최고 문학상인 스트레가상 후보에도 올랐다. 그러나 페란테는 모든 행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서면으로만 수상 소감을 전했다. 페란테는 작가에 관한 모든 것은 소설 안에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더 패리스 리뷰』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미디어가 작가의 명성만을 따를 뿐, 책 자체나 작품의 가치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문학적 전통과 기법 등 오랜 시간 동안 집약되어 문학 안에 포함된 집단 지성이 작가가 등장하는 순간 모두 약화된다는 것이다.
“책은 한 번 출간되고 나면 그 이후부터 저자는 필요 없다고 믿습니다. 만약 책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남아 있다면 저자가 독자를 찾아 나서겠지만, 남아 있지 않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엘레나 페란테
페란테는 25년 동안 은둔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것이 부재가 만들어낸 창작 공간이었다고 말한다. 작가를 지우는 순간 작품은 그전에 없었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작가의 부재 때문에 생긴 텅 빈 공간을 작품이 채운다는 것이다.
우정, 그리고 빈곤과 폭력이 뒤섞인 서사
『나의 눈부신 친구』는 '릴라'와 '레누'라는 두 주인공의 유년기부터 사춘기까지의 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릴라를 회상하는 레누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릴라와 레누는 나폴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구다. 그들의 우정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연대이면서도, 끊임없이 갈등과 경쟁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선 위에 놓여 있다. 한 사람의 성공이 다른 한 사람의 열등감이 되고, 한 사람의 불행이 또 다른 한 사람의 안도감이 되는 관계. 그러면서도 그들은 서로를 떠날 수 없다.
릴라는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지만, 경제적 한계와 보수적인 가정환경으로 인해 꿈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한다. 반면, 레누는 릴라만큼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며 학업을 지속한다. 레누는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학업을 통해 얻은 성취감이 릴라의 비범한 재능 앞에서는 초라하게 느껴진다. 릴라는 레누가 가는 길을 따라갈 수 없고, 레누 역시 릴라가 가진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지성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우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빈곤과 사회적 억압이다. 두 사람이 태어난 1950년대 나폴리는 전쟁의 상흔이 깊게 남아 있는 곳이었다. 전후 경제 불황으로 인해 도시는 피폐해졌고, 특히 남부 지역은 북부에 비해 더욱 심각한 빈곤 속에 놓여 있었다. 나폴리의 노동자 계층은 교육의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고, 여성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현실이 펼쳐졌다.
릴라와 레누가 사는 동네는 마피아와 고리대금업자의 지배를 받는 곳이다. 동네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돈과 폭력을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며, 가난한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두 주인공은 마피아가 장악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며, 부당한 권력과 폭력이 삶을 지배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폭력은 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나폴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폭력은 일상적이며, 그것은 단순히 신체적 폭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란 릴라와 레누는 가정폭력, 성차별, 계급 차별, 그리고 사회적 억압이 삶을 지배하는 현실을 경험한다. 릴라의 아버지와 오빠는 릴라를 사랑하지만 릴라를 창밖으로 던져버리기도 하고 고함을 지르고 폭력을 행사한다. 레누의 아버지도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어머니와 레누를 때린다. 레누와 릴라뿐 아니라 동네의 모든 사람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분노하는 여성들은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싸운다. 레누는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남성과는 달리 지적이고 친절했던 도나토 사라토레를 존경한다. 그러나 어느 날 방어할 틈도 없이 도나토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페란테는 “현실을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오히려 두려움을 느낀다”며 “소설 속 여성들은 강하고 교육받았으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권리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충격에 쉽게 부서진다”라고 말한다. 레누도 교육받은 여성이지만 당시 어떠한 대처도 하지 못한다.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빈곤과 폭력은 두 주인공의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경제적 상황과 사회적 억압은 이들의 우정을 왜곡시키고, 때로는 서로를 질투하게 만들며, 또 때로는 서로를 더욱 강하게 연결하는 요인이 된다. 릴라와 레누의 관계는 사회적 구조와 개인적 욕망이 얽혀 있는 복잡한 관계다. 한 사람의 성공은 곧 다른 한 사람의 실패처럼 느껴지고, 한 사람의 선택이 다른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요소가 된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서로를 떠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릴라와 레누는 서로를 질투하면서도 사랑하고, 서로를 떠나려고 하면서도 다시 되돌아온다. 이러한 관계는 단순히 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이 속한 사회가 만들어낸 관계의 형태다. 그리고 이는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정이란 무엇인가?” “사회적 환경은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빈곤과 폭력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가?” 『나의 눈부신 친구』는 우리 모두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과도 같은 작품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이 작품은 릴라와 레누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사회 구조가 어떻게 인간의 삶과 관계를 형성하는지 보여준다. 페란테는 두 여성의 우정을 통해 개인적인 감정이 단순히 사적인 영역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영향을 받으며 변화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릴라와 레누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선택과 갈등이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릴라는 학업을 지속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고, 그녀가 결혼을 선택하는 과정 역시 개인적인 결정이 아닌 사회적 억압의 결과다. 반면 레누는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그녀가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본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 계급적 조건이 큰 영향을 미쳤다. 두 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적 위치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구조적 장벽은 결코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특히 릴라와 레누의 관계는 그들이 속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하나의 정치적 관계다.
이탈리아의 1950년대는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시대였으며, 특히 남부 지역은 가난과 마피아의 지배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여성들은 교육의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했고, 결혼이 유일한 생존 전략처럼 여겨졌다. 릴라의 결혼은 그녀가 처한 시대적 환경과 사회적 현실이 만든 필연적인 결과였다. 레누는 학업을 통해 사회적 이동을 꿈꾸지만, 그녀 역시 사회 구조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성공을 거두고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여전히 릴라가 남아 있는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지 않는다. 그녀는 성공이 완전한 해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 조건과 환경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깊이 규정하는지를 깨닫는다.
페란테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 삶에서 가장 사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조차도 사회적,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하게 드러낸다. 우리의 감정, 선택, 관계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우리가 속한 사회적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조정된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이 어떻게 사회적 환경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며, 결국 그 시대의 일부가 되는지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독자들에게 묻는다. "우리는 정말 자유로운가?" "우리의 삶과 관계는 얼마나 사회적·정치적 영향을 받고 있는가?" "개인의 선택은 어디까지가 개인적인 것이며, 어디서부터가 사회적인 것인가?" 이 작품이 시대를 초월해 공감을 얻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가장 사적인 것이, 결국 가장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우정은 연대이며, 삶의 일부다
우정은 일상 안에서 만들어지는 평범하고 사적인 관계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하나의 연대이자, 때로는 경쟁과 질투, 사랑과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감정의 집합체다.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릴라와 레누의 관계는 이러한 우정의 다층적인 면모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릴라와 레누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지만, 그들의 관계는 언제나 부드럽고 안정적이지 않다. 때로는 서로를 의지하면서도, 때로는 상대를 질투하고 경쟁하며 복잡한 감정을 교환한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의 기복 속에서도 그들은 결코 서로를 완전히 놓지 않는다. 이는 그들의 우정이 단순한 친밀감을 넘어, 삶을 함께 견디고 나아가는 연대의 한 형태임을 의미한다.
우정이란 반드시 평등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 속에서 레누는 끊임없이 릴라를 동경하고 질투하며, 그녀를 뛰어넘으려는 욕망을 품는다. 반면 릴라는 레누를 자극하고 때로는 냉정하게 대하지만, 결국 그녀를 응원하고 돕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의 삶을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영향력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또한, 우정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결속이기도 하다. 릴라와 레누는 나폴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로, 비슷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기에 서로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길은 달라지고, 환경이 바뀌면서 관계의 양상도 변한다. 한 사람은 학업을 통해 사회적으로 이동하고, 다른 한 사람은 결혼을 통해 현실과 타협한다. 하지만 그들이 걸어가는 길이 다르다고 해서 우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기억하고, 이해하려 하며, 때로는 용서하는 과정이 우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론: 우리는 진정한 우정을 찾았는가?
『나의 눈부신 친구』는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삶과 사회를 꿰뚫는 하나의 질문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 우정을 맺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 시대의 우정은 안녕한가? 우리는 서로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고 있는가? 우정은 인생 최초의 갈등이자 연대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를 통해서만 세상은 바로 설 수 있다.
"우리는 진정한 우정을 찾았는가?"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눈부신 친구』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