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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순이 삼촌』은 한 개인의 삶을 통해, 제주라는 섬이 품고 있는 깊고 오래된 고통을 들추어내며, 더 나아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순간, 바로 제주 4·3 사건이라는 국가적 참극을 조명한다.
순이 삼촌은 실제 이름도, 실제 인물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겪은 일은 수많은 제주도민의 삶 속에 고스란히 존재해 왔다. 어떤 이의 어머니였고, 누이였고, 할머니였던 그들은 순이 삼촌이라는 이름 하나로 묶여 문학의 얼굴을 얻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읽는 일은 단지 한 권의 소설을 넘기는 일이 아니다. 잊힌 얼굴들을 다시 떠올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는 일이 된다.
『순이 삼촌』은 말한다. 전쟁이 아니었지만 수천 명이 죽었던 그날들을, 정당한 절차도 없었던 집단 학살을,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용서받지 못한 자’로 낙인찍혀야 했던 사람들의 심정을. 문학은 증언이 되고, 증언은 다시 질문이 된다. 이토록 무겁고 고통스러운 질문 앞에서, 우리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과연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얼마나 들어주었는가? 얼마나 외면했는가?
이 글에서는 『순이 삼촌』이 문학이라는 매개를 통해 어떻게 역사와 지역의 아픔을 담아냈는지를, 그리고 그 아픔을 넘어 평화로 가는 문을 열 수 있었는지를 긴 호흡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침묵과 망각의 역사를 지나온 지금, 『순이 삼촌』은 우리가 다시 마주해야 할 진실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기억이다.
문학 속 비극의 재현: 기억을 되살리는 이야기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저며오기 시작한다. 별다른 연출도, 자극적인 장면도 없이 그저 담담히 서술된 이야기인데도, 독자의 가슴은 자꾸 뭔가에 눌린 듯 무거워진다. 마치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 오래된 먼지처럼, 묻히고 감춰졌던 기억들이 하나둘 일어나 독자의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이내 눈가를 적신다. 그것은 단지 한 인물의 비극에 공감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우리가 외면해 왔던 역사, 듣지 않았던 증언, 그리고 잊은 척 살아왔던 '우리의 일'에 대한 죄책감이 뒤섞인 눈물이다.
소설은 조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시작된다. 순이 삼촌이라는 인물이 고향 제주도의 밭에서 생을 마감한다. 겉으로 보기에 그녀의 죽음은 노쇠한 노인이 병약함과 정신적 쇠약을 이기지 못해 선택한 외로운 결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우리는 그 죽음이 단지 생의 끝이 아니라, 오랜 침묵과 억눌린 기억의 절규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순이 삼촌은 단지 ‘죽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살아남은 자’였고, 바로 그 이유로 더 깊고 무거운 고통을 짊어진 존재였다.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순이 삼촌은 총성이 울리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운동장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그녀를 구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존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살아남았기에, 죽은 자들의 침묵을 대신 짊어져야 했고, 살아남았기에, 그 과거를 말할 수도 없는 채로 사회의 편견과 멸시를 견뎌야 했다. ‘빨갱이의 가족’, ‘정신이상자’, ‘이상한 여자’라는 낙인이 그녀를 옭아맸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점점 벽을 쌓아갔다. 말할 수 없고, 말해도 믿지 않는 세상 속에서 순이 삼촌은 살아 있는 유령처럼 존재해야만 했다.
작품 속에서 그녀는 조카 내외와 서울에서 잠시 함께 지내지만,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단순히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노인의 귀향이 아니었다. 그것은 ‘말해지지 못한 과거’와 ‘듣지 않으려는 현재’ 사이에서 철저히 소외된 존재가, 자신이 가장 비참했던 장소로 되돌아가 역사의 기억으로서 남기 위해 스스로를 봉헌하는 길이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누운 밭은, 과거 학살이 자행되었던 장소이자, 그녀가 생존한 공간이며, 동시에 그녀의 고향이었다. 고통과 기억, 그리고 사랑이 모두 얽혀 있는 장소였다.
『순이 삼촌』은 순이 삼촌의 죽음을 통해 독자에게 묻는다.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는 누구인가?” 이 소설은 단지 비극적인 죽음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말해지지 못한 비극, 감춰진 진실, 억눌린 감정을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아 세상에 꺼내놓는다. 그리고 독자에게,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고, 더 이상 침묵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 점에서 『순이 삼촌』은 ‘기억을 환기시키는 문학’의 본질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과거의 상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독자가 그 상처를 외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제 안다. 그녀의 고통이 단지 그녀만의 몫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고통은 우리 모두의 몫이며, 우리가 이어가야 할 기억이라는 것을.
지역의 아픔, 공동체의 상처
오늘날 우리는 제주를 떠올릴 때 맑은 바다와 푸른 하늘, 그리고 평화로운 돌담길과 유채꽃밭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풍경 아래에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상흔이 고요히 남아 있다. 『순이 삼촌』은 바로 그 풍경의 이면, 아름다움 속에 숨어 있는 비극의 기억을 조심스럽게 끌어올리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단지 개인의 트라우마가 아니라, 지역 전체가 겪은 집단적 고통이자, 한국 사회가 여전히 감당하지 못한 역사적 책임이기도 하다.
제주 4·3 사건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해야 했다. 그 선택은 강요된 것이었고, 침묵은 생존의 수단이었다. 누군가의 가족이 빨갱이로 몰리면, 그 주변 사람들마저도 연좌제로 의심받던 시대. "그 일에 대해 말하지 마라"는 말은 제주도의 가정과 마을 곳곳에 깊게 박혀, 세대를 넘어 내려왔다. 기억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진실은 골목 안 어딘가에 숨어버렸다.
『순이 삼촌』 속에서 순이 삼촌이 서울에 있는 조카 집으로 올라가 머무르는 에피소드는 단지 시대적 불화나 세대 차이로 읽히지 않는다. 그녀는 그 공간에서조차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밥을 많이 먹는다’, ‘국물을 흘린다’는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움츠러들며, 자신이 ‘짐’이 되고 있다는 자각에 마음을 닫는다. 세상이 그녀에게 내민 손은 결국 불신과 혐오였고, 그 안에서 그녀는 더욱더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싶어지는’ 사람이 되어간다.
이러한 상황은 단지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제주 공동체 전체가 겪은 상처이며, 또다시 그 상처를 감싸고 살아야 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순이 삼촌』은 제주라는 지역이 단지 자연경관으로 소비되는 섬이 아니라, 아직도 제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 아픔의 장소임을 말한다.
작중 제사의 장면은 공동체가 어떻게 그 기억을 간직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조카들과 마을 어른들이 모여 술을 나누고 옛이야기를 꺼내는 그 순간, 4·3은 단순히 역사책에만 존재하는 과거가 아니다. 그날, 그 사건은 여전히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 쉬며, 의식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제사는 단지 조상을 위한 의례가 아니다. 말할 수 없었던 역사를 말하는 자리, 기억이 기억을 부르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평화’의 시작이기도 하다.
망각은 상처를 덮는 일이지만, 기억은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다. 제주 공동체는 말하지 못해 왔지만, 그 기억은 매 해 제삿날 술잔 위에서, 무심한 말속에서, 흘러나온다. 어른들의 이야기 속에는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사이의 애도가 있고, 더 이상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이 있다.
『순이 삼촌』은 그 침묵의 무게를, 말해지지 못한 상처의 깊이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렇게 소설은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그들의 상처를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는 과연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을까?
문학이 전하는 평화의 의미
『순이 삼촌』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묵념이다. 과거의 비극을 다시 꺼내어 기억하는 일은 때때로 고통스럽고, 불편하며, 불안한 과정이 된다. 그러나 현기영 작가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단단하게 우리의 손을 잡고 그날의 제주로 우리를 이끈다. 그곳에는 순이 삼촌이 있고, 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이 있고, 말하지 못한 사람들의 침묵이 겹겹이 쌓여 있다.
순이 삼촌이 생을 마감한 곳은 밭이었다. 따뜻한 이불도, 가족의 손길도 없이, 그녀는 조용히 혼자 죽음을 맞이한다. 그 밭은 단순한 땅이 아니다. 그곳은 그녀가 학살을 피해 숨었던 곳이고, 동네 사람들이 끌려가 총살당했던 장소이며, 그날의 기억이 뿌리처럼 박혀 있는 곳이다. 그녀는 그 땅 위에서 죽음이라는 마지막 선택을 통해 자신의 생을 기억으로 바꿔 남기려 했다. 그 죽음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스스로를 역사에 다시 새기고자 하는 마지막 행위였다.
그녀의 죽음을 통해 작가는 말한다. “기억은 살아 있는 것”이라고. 잊힌 진실은 다시 되살려져야 하고, 그 기억 위에서야 비로소 평화는 시작된다고.
평화는 화려한 선언이나 정책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먼저 고통의 기억을 직면하려는 용기에서 출발한다. 『순이 삼촌』은 독자에게 그 용기를 요구한다. 더 이상 외면하지 말자고,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고.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제주 고유의 풍경과 언어는 그저 배경이 아니다. 바람이 불고, 밭담이 이어지고, 사투리가 섞인 대화가 오가는 장면들은 이 땅이 살아 숨 쉬는 공간임을, 이곳에서 누군가가 울고 웃으며 살아왔음을 증명한다. 문학은 그 일상을 기억하게 하고, 그 기억을 통해 우리는 ‘사람답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순이 삼촌』이 전하는 평화는 대단한 철학적 언어나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무너진 돌담을 다시 쌓고, 돌아오지 못한 이름을 불러주는 것에서 출발하는 평화다.
평화는 말해지지 못한 과거를 대신 말해주는 것, 잊힌 자들을 기억하고, 남겨진 상처를 다정히 어루만지는 일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그런 평화를 배운다. 순이 삼촌의 침묵은 이제 더 이상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작가의 손을 거쳐, 독자의 가슴으로 이어지고, 다시 사회의 기억으로 확장된다. 문학은 그렇게 한 사람의 고통을 모두의 책임으로 바꾸는 일을 해낸다. 그 책임감이, 바로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다.
오늘 우리가 『순이 삼촌』을 읽는 일은, 단순히 소설 한 편을 감상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말 없는 영정 사진 앞에 고개를 숙이는 일이며, 소리 없는 울음을 이해하려는 마음의 행동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모였을 때, 우리는 비로소 다음 세대에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잊지 않았다”라고, “이제는 지켜낼 것”이라고.
끝나지 않은 이야기, 우리가 이어가야 할 기억
『순이 삼촌』은 끝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야기, 여전히 남아 있는 상처, 그리고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과제를 우리 앞에 꺼내놓는다. 순이 삼촌의 죽음은 한 사람의 생애의 끝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우리는 누구를 잊고 살아왔는가?”,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독자는 이전과 같은 시선으로 제주를, 그리고 한국 현대사를 바라볼 수 없게 된다. 한 권의 문학작품이 한 지역의 아픔을 넘어, 이 나라의 집단 기억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순이 삼촌』은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이 작품을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듣지 않으면, 또 다른 순이 삼촌이 생겨날 수 있다.
침묵하면, 고통은 계속된다.
순이 삼촌은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작가는 대신 말했다. 그리고 이제 그 목소리는 독자의 마음속에 닿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이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이제는 ‘기억하는 인간’으로서 살아가겠노라고.
이 소설은 그렇게 한 시대의 상처를 넘어, 한 인간의 윤리를 말한다.
기억과 공감, 연대와 화해, 그리고 평화.
『순이 삼촌』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인간적인 언어들이다.
이제 우리는 그 언어들을 가슴에 새기고, 말없이 울고 있던 또 다른 순이 삼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조용히 손을 잡아주듯이, 그 기억을 함께 나누겠다고.